교사는 자기를 향해 올라오고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말을 타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걷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산 중턱에 세워진 학교 쪽으로 난 가파른 언덕길에는 접어들지 못했다. 그들은 인적 없는 높은 고원, 광막한 넓이에 두루 널린 자갈들 사이로 눈을 밟으며 고생스럽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따금 말이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곤 하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아직 말굽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말이 콧구멍으로 무럭무럭 내뿜는 김이 보였다. 적어도 그중 한 사람은 이 고장을 잘 아는것 같았다. 벌써 며칠째 길이 우중충한 흰 눈더미 밑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용케도 잘 찾아오고 있는 것이였다. 교사는 그들이 언덕위로 올라서려면 반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짐작했다. 날씨는 추웠다. 털 재킷을 가지러 그는 학교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텅 비고 써늘한 교실을 건너갔다. 흑판위에는 각각 색이 다른 네 가지 분필로 그려진 프랑사의 4대 강이 사흘째 하구를 향하여 흐르고 있었다. 10월 중순에 접어들자 갑자기 눈이 퍼부어댔다. 8개월동안이나 가뭄만 계속된 끝에 비는 오지 않고 느닷없이 눈이 퍼부은 것이다. 그래서 고원 위 여기저기에 흩어진 촌락에 사는 20명 가량의 생도들은 더 이상 학교에 오지 않았다. 날씨가 좋아지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뤼는 자신이 거처하는 하나의 방에만 불을 피웠다. 교실 옆에 붙어있고 또한 동쪽 고원으로 나있는 방이었다. 교실의 유리창들과 마찬가지로 남쪽으로 난 창도 하나 더 있었다. 그쪽에서 보면, 학교는 고원이 남쪽을 향하여 겨사져 내려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었다. 청명한 날에는 멀리 산맥의 보랏빛 덩어리들을 볼 수 있었다. 거기가 사막이 시작되는 관문이었던 것이다.

 약간 몸이 녹자 다뤼는 처음 두사람을 발견했던 창문께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비탈길에 들어선 것이 분명했다. 하늘의 어두운 빛이 좀 엷어진 듯했다. 간밤에 눈이 멎은 탓이었다. 아침은 음산한 빛 위로 밝아왔고 구름이 차차 걷히는 데 따라 빛은 어렴풋이나마 생기를 띠었다. 오후 2시나 되어서야 비로소 낮이 시작되는 느낌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그치지 않는 어둠 속에 촘촘한 눈발이 마구 쏟아지고, 휘몰아치는 바람이 교실의 겹문을 뒤흔들던 지난 사흘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그때 다뤼는 오랜시간동안 방안에서만 꾹 참고 지냈는데, 밖으로 나오는 일이라고는 닭을 돌보거나 석탄을 가지러 갈 때뿐이었다. 다행히도 북쪽으로 제일 가까운 타지드 마을의 소형 트럭이 눈보라 치기 이틀전에 보급품을 실어다 주고 갔었던 것이다. 차는 이틀 후에 다시 오기로 되어있었다.

 하기야 작은 골방에 잔뜩 쌓인 밀부대가 있으므로 이 포위상태를 감당해나가기에는 충분했다. 이 밀보라는 가뭄으로 패해를 입은 세대의 생도들에게 배급하도록 정부에서 예비로 보내온 식량이었다. 사실 모두 가난한 처지인 만큼 누구나 다 같이 재난의 피해를 입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매일 다뤼는 아이들에게 그날 그날의 할당향을 나누어 주었다. 사나운 날씨가 계속되었으니 요즈음 그들은 식량이 떨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누구네 아버지나 형이 오늘 저녁이라도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그는 곡식을 공급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해의 수확으로 갚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제 밀을 실은 배가 프랑스에서 도착하고 있으니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참혹한 가난이며, 이글거리는 햇볕 아래 누더기를 걸치고 헤매는 유령같은 사람들 무리며,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더 까맣게 타들어가는 고원, 문자 그대로 불더위에 볶여 차츰 말라 붙은 땅, 발로 밝으면 먼지가 되어 바스러지는 자갈 --- 이모든 비참함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양떼들은 수천 마리가 쓰러졌고, 사람들 또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저기서 죽어간 것이다.

  이러한 참상을 눈앞에 두고 보자니 외떨어진 이 학교에서 거의 수도사나 다름없이, 얼마 안되는 살림과 이 고된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 그는 스스로가 마치 왕이라도 되는 듯이 여겨졌다. 자기 혼자서 회칠로 단장한 벽과 좁은 장의자, 하얀 나무 선반들과 우물을 가지고 있고 물과 양식을 매주 빠짐없이 공급받고 있는것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비가 내리는 과도기를 거칠 겨를도 없이 눈이 쏟아졌다. 이 고장은 본래 이렇듯 살기 어려운 곳인데 그곳에 사는 인간들끼리의 문제 또한 간단치는 않았다. 그러나 다뤼는 여기서 태어났다. 어디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면 그는 적지의 신세가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는 밖으로 나와 학교 알뜰 축대 끝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이제 언덕 중턱에 이르고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그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나이 많은 헌병인 발뒤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발뒤시는 아랍 사람 하나를 포승에 묶어가지고 호송하고 있었는데, 이 아랍 사람은 두손이 묶인 채 머리를 푹 숙이고 뒤따라 오고 있었다. 헌병은 몸짓으로 인사를 했지만, 다뤼는 답례도 하지 않은 채 한 때는 푸른색이었을 헌 젤라바(북아프리카의 아랍인들이 입는 두건 달린 소매 긴  --- 옮긴이주)를 입고 있는 이 아랍인을 정신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샌들을 거친 발은 두툼한 생사빛 양털 양말에 덮여 있었고 머리에는 좁고 짧은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가까워졌다. 발뒤시는 아랍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걸음을 늦추었고 그들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목소리가 들릴 만하게 되자 발뒤시가 외쳤다. "엘 아뫼르에서 여기까지 3킬로미터 걷는 데 한 시간이 걸렸네!" 다뤼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툼한 털 재킷 속에 키 작고 딱 벌어진 체격으로 그는 그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랍 사람은 단 한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들이 앞뜰로 들어서자 다뤼는 "안녕하슈." 하고 말했다. "자, 들어와서 몸을 녹이시구려." 발뒤시는 포승을 손에 쥔 채 힘들게 말에서 내렸다. 그는 뻣뻣하게 곤두선 수염 속에서 교사를 향해 웃어 보였다. 볕에 익은 이마 밑으로 움푹 파인 작고 어두운 두눈과 가장자리에 주름이  많은 입이 주의 깊고 찬란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다뤼는 고삐를 잡아 말을 차양 달린 헛간으로 끌어다 둔 다음 다시 두사람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학교 안에서 다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자기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교실에다 불을 피우겠어요. 거기가 더 편할 거예요."하고 그는 말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보니 발뒤시는 장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포승을 좀 늦춰주었는지 아랍사람은 화로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손은 여진히 묶인 채, 그리고 두건은 이제 좀 뒤로 젖힌 채 창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뤼의 눈에는 우선 팽팽하고 매끄러워 거의 흑인과도 같은 그의 큼직한 입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코는 우뚝하고 두눈은 어둡게 이글거렸다. 두건이 뒤로 젖혀지자 고집스러워보이는 이마가 드러났고 살결이 볕에 탔으나 추위로 빛이 흐려진 얼굴에는 불안과 반항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아랍사람이 그에게 얼굴을 돌리면서 눈을 빤히 쳐다보자 다뤼는 그 표정에 놀랐다. "옆방으로 가세요, 박하차를 끓여드릴 테니."하고 그는 말했다. "고맙소, 이 무슨 고역이람! 어서 은퇴를 해야지, 원." 하고 발뒤시가 말했다. 그리고 아랍어로 죄수에게 일렀다. "넌 이리로 와." 아랍사람은 천천히 일어서서 천천히 묶인 두 손목을 앞으로 내밀며 교실안으로 들어갔다.

 다뤼는 차와 함께 의자를 하나 가져왔다. 그러나 발뒤시는 벌써 맨 앞 생도 책생에 걸터앉아 있었고, 아랍사람은 사무용 책생과 창 사이에 있는 난로를 마주하고 교단에 몸을 의지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찻잔을 죄수에게 내밀려다가 다휘는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머뭇거렸다. "풀어줘도 되겠지요, 뭐" "그럼, 여행을 하느라고 그런 거니까."하고 발뒤시가 말했다. 그는 일어서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다뤼가 잔을 바닥에 놓고 아랍 사람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아랍사람은 입을 다문채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가 하는것을 보고 있었다. 손이 자유스러워지자 부은 손목을 마주 비비더니 찾잔을 들고는 뜨거운 차를 조금씩 조금씩 다급하게 들이삼켰다.

 "그런데, 참 이러고 어딜가시는 거예요?" 하고 다뤼는 물었다. 발뒤시는 찻잔에서 수염을 떼놓으면서 말했다. "여길 오는 거지, 이사람아."

 "괴상한 생도들이군요. 그래 여기서 주무실 작정이세요?"

 "아니, 난 엘 아뫼르로 돌아가네. 그리고 자넨 이 친구를 탱기에 넘겨주게. 공동구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발뒤시는 다뤼를 바라보며 다정스럽게 웃어 보였다.

 "아니 그게 무슨소리예요. 날 놀리는 건가요?" 하고 교사가 말했다.

 "아니야, 이 사람아. 이건 명령일세."

 "명령이라고요? 내가 무슨 ......."

 다뤼는 머뭇거렸다. 그늙은 코르시카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쨋든, 그런 건 내가 할일이 아닌걸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전시엔 무슨 일이든지 다 해야 하는걸세!"

 "그렇다면, 선전포고를 기다렸다가 하지요!"

 발뒤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명령은 떨어졌네. 그것은 또 자네에게도 관계가 있는 일일세, 세상이 시끄러운 것 같아. 머지않아 반란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어. 우린 어떻게 보면 동원당한 셈일세."

 다뤼는 여전히 고집스러운 표정이었다.

 "여보게, 이 사람아. 난 자네를 좋아하네만, 이해 좀 해줘야겠네. 엘 아뫼르 사람은 열둘뿐인데 이 작은 도(道)만한 지역을 순찰해야 한단 말이야. 그래 난 돌아갈 수밖에 없네. 자네에게 이녀석을 맡기고 지체없이 돌아오라는 분부니까. 이놈을 거기다 둘 수는 없는 형편이었네. 글쎄 마을 사람들이 웅성대며 놈을 빼내가려는 거야. 내일 안으로 자네가 탱기에 대려다 주어야 하네. 아, 자네같이 건장한 사람이 20킬로미터 정도쯤이야 대순가. 데려다 주기만 하면 끝일세. 그리고 나서 생도들을 다시 만나고 걱정 없는 생활로 되돌아 오는거네."

 벽 뒤에서 말이 코를 씨근거리며 발굽으로 땅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뤼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날씨는 이제 완전히 개어, 햇빛이 눈이 덮인 고원 위에 넓게 퍼져가고 있었다. 눈이 다 녹으면 다시금 태양이 이글거릴 것이고, 또다시 이 돌밭을 불태우리라. 여러 날을 두고 까딱도 않고 있는 하늘이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외로운 고원위에 그 메마른 빛을 퍼부으리라.

 "헌데, 이사람은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하고 발뒤시 쪽을 돌아보면서 다뤼가 말했다.

 그러고는 미처 헌병이 입을 열기도 전에 물었다.

 "프랑스말을 합니까?"

 "아니, 한마디도 못해. 벌써 한달째나 수배를 받고 있었는데 저들이 숨겨주고 있었다고. 사촌을 죽인 놈일세."

 "우리한테 적대적인가요?"

 "그런 것 같지는 않네만, 어디 알 수가 있었야지."

 "왜 죽였데요?"

 "집안 싸움인 것 같아 한 쪽이 양식을 꿔가고 안 갚았나 보더군 분명치가 않아. 하여간 간단히 말해서 사촌을 낫으로찍러 죽였단 말이야. 있잖아, 마치 양을 잡을 때같이 확!......"

 발뒤시는 자기의 목을 칼로 긋는 시늉을 했다. 아랍사람은 신경이 쓰이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다뤼는 이삶에 대해서, 모든 인간들에 대해서, 그들의 악의와 지칠줄 모르는 증오, 피를 보고 싶어하는광기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찻주전자가 화로 위에서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발뒤시에게 차를 따라주고, 어쩔까 망설이다가 아랍사람에게도 다시 따라 주었다. 이번에도 그는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들이 마셨다. 두팔을 치켜 올리는 바람에 젤라바 옷깃이 약간헤쳐져 교사의 눈에 말랐지만 근육이 발달한 가슴이 들여다 보였다.

 "고맙네, 이사람아." 하고 발뒤시는 말했다. "자, 그런 난 가보겠네."

 그는 일어서서 호주머니 속에서 포승을 꺼내면서 아랍 사람에게로 갔다.

 "뭘 하는 거예요?" 하고 다뤼가 딱딱하게 물었다 .

 발뒤시는 주춤하며 그에게 포승을 보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늙은 헌병은 머뭇거렸다.

 "좋도록 하게, 물론 총은 가져겠지?"

 "엽총이 있습니다."

 "어디?"

 "궤짝 안에요."

 "침대 곁에 놓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왜요? 난 아무것도 두려울게 없어요."

 "자네, 정신 나갔군. 저놈들이 들고 일어서는 날엔 아무도 안심할 수가 없다네. 우린 모두 같은 운명일세."

 "방어하지요. 그들이 올라오는 것을 볼 시간적 여유는 있으니까요."

 발뒤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문득 수염이 아직은 하얀 이를 가렸다.

 "시간 여유가 있다고? 좋아. 내말이 그말이야. 자넨 언제 봐도 좀 정신이 나간 것 같다니까. 바로 그래서 내가 자넬 좋아하지, 내 아들놈도 그랬거든."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기의 권총을 꺼내서 책생위에다 놓았다.

 "이걸 간직해두게. 여기서 엘 아뫼르까지 가는 데 총이 두자루씩 필요한건 아니니까."

 권총은 검은 페인트 칠을 한 책상 위에서 번쩍였다. 헌병이 다시 그를 향해 돌아서자 교사는 그에게서 가죽과 말 냄새가 풍겨오는 것을 느꼈다.

 "이것 보세요, 발뒤시." 갑자기 다뤼가 말했다. "나는 이런거 모두 다 정말 싫어요, 저녀석부터가. 그러나 난 저 사람을 넘겨주지 않겠어요. 물론 필요하다면 싸우겠어요. 하지만 그 짓만은 못해요."

 늙은 헌병은 그의 앞에 우뚝 서서 정색을 하고 노려보았다.

 "어리석게 구는군." 하고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좋아서 하는건 아냐. 사람을 밧줄로 묶는다는 것, 여러해 동안 해온 짓이지만 아무래도 익숙해질 수 있는 짓은 아닐세. 그래, 부끄러운 짓이야, 하지만 놈들 하는 대로 가만 놓아둘 수야 없는 일이야."

 "난 이사람을 넘겨주지 않겠어요." 하고 다뤼는 거듭 말했다.

 "명령일세, 이 사람아. 되풀이해 말하지만."

 "그래요, 가서 내가 말한 그대로 전하세요. '나는 넘겨주지 않겠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발뒤시는 생각을 가다듬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아랍 사람과 다뤼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마음을 정했다. "아니야, 가서ㅓ 아무 말도 하지 않겠네, 우리편을 버리고 싶걸랑 마음대로 하게, 자네를 고발할 생각은 없네. 나는 죄인을 인계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그대로 하는 거야. 자, 여기 서류에 서명해 주게."

 "필요 없어요. 내게 죄인을 맡기고 간 것을 부인할 나는 아닙니다."

 "자, 너무 그러지 말게. 자네가 사실을 말하리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여기 사람이고 사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니 서명해주어야 겠네."

 다뤼는 서랍을 열고, 보랓빛 잉크가 든 네모난 작은 잉크 병과 글씨체 교본용 '특무 상사'표 펜촉을 끼운 붉은 목제 펜대를 꺼내서 서명했다. 헌병은 조심스럽게 종이를 접어서 지갑 안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모셔다 드리지요."하고 다뤼가 말했다.

 "아니, 뭐 예의를 갖출 것까지는 없네. 자넨 날 모욕했어."라고 발뒤시가 말했다.

 그는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아랍 사람을 바라보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코를 훌쩍이더니 문을 향해 걸어갔다. "잘 있게, 이 사람아."하고 그는 말했다. 문이 쾅 닫혔다. 발뒤시의 모습이 창문에 불쑥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눈 때문에 그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로막힌 벽뒤에서 말이 움직였고 암탉들이 놀라 푸덕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에 발뒤시는 다시 고삐를 잡고 말을 끌면서 창문 앞을 지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가 먼저 사라졌고 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큼직한 돌멩이가 하나 힘없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뤼는 죄수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을 떼지 않고 다뤼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게." 하고 교사는 아랍어로 말하면서 방쪽으로 갔다. 문턱을 넘어서려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책상으로가 권총을 집어 호주머니 속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 보지않고 자기방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그는 장의자에 드러누워 하늘이 차차 닫혀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전쟁이 끝난 후 여기 도착하여 처음 며칠을 보내는 동안 그에게 견디기 어렵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 바로 그 침묵이었다. 그는 고원지대와 사막이 갈라지는 산줄기 아래 있는 작은 마을에 일자리를 신청했었다. 그곳에서는 북쪽은 검은색과 초록빛, 남쪽은 핑크색이나 보라색을 띤 바위의 성벽이 영원한 여름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데 그는 좀더 북쪽, 바로 고원 위의 일자리에 배치된 것이다. 처음엔 돌만 잔뜩 널려 있는 이 불모지에서의 고독과 침묵은 그에게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이런 땅에 이따금 고랑이 파진 것을 보고서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집을 짓는 데 쓰는 어떤 종류의 돌을 파내기 위해 땅을 팠던 흔적들이었다. 여기서는 땅을 갈아봤자 거두는 것은 돌자갈뿐이었다. 또 어떤 때는 바위틈 사이로 수북한 흙부스러기를 긁어 모으는 일도 있었는데, 그것은 마을의 메마른 정원에 거름을 주기 위해서 였다. 이렇듯, 이 고장의 4분의 3을 뒤덮고 있는 것은 자갈이었다. 거기서 도시들이 생겨나 휘황히 빛났다가 사라졌다. 사람들 또한 그곳에서 한세상 살다 갔으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물어뜯다가 이윽고 죽었다. 이 사막에서는 다뤼는 그의 손님도 그 어느 누구도 다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도 손님도 이사막을 벗어나서는 진정 살 수 없다는 것을 다뤼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일어났을 때 교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랍 사람이 도망쳐버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젠 굳이 무슨 결단을 내릴 필요도 없이 그냥 혼자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만으로도 거리낌 없는 기쁨이 솟구치는 것이어서 다뤼는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죄소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다만 난로와 책상 사이로 몸을 쭉 뻗고 누워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까 그의 두툼한 입술이 두드러져 보였고 그때문에 뚱한 표정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리 오게." 하고 다뤼는 말했다. 아랍 사람은 일어서서 그를 따라 왔다. 방에서 교사는 창 아래 책생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아랍사람은 다뤼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배고프지?"

 "네." 하고 죄수는 말했다.

 다뤼는 두 사람분의 식기를 놓았다. 밀가루와 기름을 꺼내와서 접시에다가 반죽을 이겨 전병을 만든 다음 가스 화덕에 불을 댕겼다. 전병이 불에 익는 동안 그는 나가서 치즈와 계란과 대추야자 열매와 농축 우유를 가져왔다. 전병이 다 익자 식히기 위해서 창 모서리에 놓아두고, 물을 탄 농축 우유를 끓이고 마지막으로 계란을 깨뜨려 풀어가지고 오믈렛을 만들었다. 이렇게 몸을 놀리는 가운데 오르편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어둔 권총에 손이 부딪쳤다. 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교실로 건너가서 권총을 그의 책상 서럽 속에 넣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보니 어느덧 밤이었다. 그는 불을 켜고 아랍사람에게 식사를 갖다 주었다. "자, 드시구려."아랍사람은 저병 한개를 집어 들고 부리나케 입으로 가져가다가 멈추었다.

 "당신은?" 하고 그는 말했다.

 "먼저 먹게. 나도 곧 먹지."

 아랍사람은 두툼한 입술이 약간 벌어지더니 잠시 망설였다. 이윽고 결심한 듯 전병을 덥석 깨물었다. 식사가 끝나자 아랍사람은 교사를 건너다보았다.

 "당신이 판사인가요?"

 "아니야, 내일까지 자네를 맡는 것 분일세."

 "왜, 그럼 나와 같이 식사를 하세요?"

 "배가 고파서."

 아랍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다뤼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헛간에서 간이 침대를 가지고 와 테이블과 난로 사이에, 자신의 침대와 직각이 되게 폈다. 한 모퉁이에 세워진, 서류 선반으로 쓰는 큼직한 트렁크에서 모포 두장을 꺼내서 간이 침대 위에 깔았다. 그러고는 손을 멈추었다. 무료한 기분이 들어 자기 침대에 앉았다. 이제는 아무 일도 할 것이 없었고 준비할 것도 없었다. 이 사나이를 마주 보고 있을 수 밖에. 그러자 다뤼는 결국 그를 마주 보며 화가 나서 미쳐 날뛰었을 그 얼굴을 상상해보려 했다. 그러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만 어둡고도 이글거리는 눈과 짐승 같은 입술이 보일 따름이었다.

 "왜 죽였나?" 다뤼는 이 어조 속에서 느껴지는 적의에 자신도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랍 사람이 시선을 돌렸다.

 "도망치길래 뒤따라 쫒아갔지요."

 그는 다뤼를 향해 눈을 들었다. 눈에는 비감한 의문 같은 것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두려운가?"

 그는 고개를 딴데로 돌리면서 몸이 굳어졌다.

 "후회하나?"

 아랍사람은 입을 벌린 채 그를 쳐다 보았다. 분명히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다. 다뤼는 차차 짜증이 났다. 그와 동시에 이 두침대 사이에 끼여 있는 큼직한 몸이 어쩐지 서툴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거기눕게!" 참다 못한 그가 말했다. "그게 자네 침댈세."

 아랍사람은 꼼짝도 안했다. 그는 다뤼를 불렀다.

 "이것 보세요!"

 교사는 그를 쳐다 보았다.

 "내일 헌병이 다시 오나요?"

 "모르겠는걸."

 "우리와 함께 가는 겁니까?"

 "모르겠는걸. 왜그러는가?"

 죄수는 일어나더니 발을 창 쪽으로 뻗고 모포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전등 불빛이 두눈 위로 곧장 떨어졌으므로 그는 이내 눈을 감았다.

 "왜 그러는가?" 하고 다뤼는 침대 앞에 우뚝 선 채 되풀이하여 물었다.

 아랍사람은 눈부신 불빛 아래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면서 누꺼풀을 깜박거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어싿.

 "우리와 같이 가요." 그가 말했다.

 

 

 

 한밤중이였지만 다뤼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옷을 완전히 벗은 다음 잠자리에 들어갔었다. 벌거벗고자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러나 방안에서 벌거벗은 상태가 되자 망설여졌다. 어쩐지 무방비 상태인 것만 같아서 다시 옷을 입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차하면 상대를 두쪽 낼 수도 있었다. 침대에서 그는 아랍사람을 관찰할수 있었다. 등을 깔고 누워서 그는 강한 불빛아래 눈을 꼭 감은 채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뤼가 불을 끄자 어둠이 대번에 응고하는것 같았다. 별도 없는 하늘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는 창문 속에서 차츰차츰 밤이 되살아났다. 교사는 아내 자기 앞에 누워있는 몸을 분간해냈다. 아랍 사람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지만 두눈은 뜨고 있는것 같았다. 가벼운 바람이 학교 주위를 스치고 있었다. 바람은 아마 구름을 쫓을 것이고 그러면 해가 다시 나오리라.

 어둠속에서 바람이 더욱 거세어 졌다. 암탉들이 조금 술렁대는가 했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아랍 사람은 옆으로 돌아누우며 그에게 등을 돌려댔고 신음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후 다뤼는 한 결 세차고 규칙적인 호흡 소리를 주의깊게 듣고 있었다. 그토록 가까이에서 나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한채 몽상에 잠겼다. 1년째 혼자서 자는 방 안에서의 이존재는 그에게 거북스러웠다. 또한 이 존재가 거북스러운 것은, 지금의 상황에 있어서는 거절할 수밖에 없는 친밀감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친밀감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병정들이건 포로들이건, 같은 방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란 마치 저녁마다 옷을 벗는 것과 동시에 무장도 풀어버리고 서로의 차이를 초월하여 꿈과 피로의 저해묵은 공동체 속에 서로 한덩어리가 되어버렸다는 듯이, 서로간에 기이한 유대를 맺는 것이다. 다뤼는 몸을 흔들며 마음을 추스렸다. 이런 허튼 생각은 질색이었다. 잠을 자야만 했다.

 그러나 조금 후에 아랍사람이 아주 약간 움직였을 때도 교사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죄수가 두번째로 또 움직이자 그는 경계하며 긴장했다. 아랍사람은 마치 몽유병자와 같은 몸짓으로 두팔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침대위에 일어나 앉더니 다뤼 쪽으로는 돌아보지도 않은채 마치 모든 주의력을 다하여 무엇엔가 귀를 기울이는 듯이 그냥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다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권총을 책상 서랍안에 넣어 두었지 하는 생각이 이제 막 떠오른 것이었다. 지체 없이 행동에 옮기는 것이 좋을 성 싶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죄수를 살펴보고만 있었다. 아까와 같이 부드럽고 느린 동작으로 죄수는 발을 땅에 내려놓더니 한동안 기다렸다가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다뤼가 그를 막 부르려 하는데,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한없이 고요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헛간 쪽으로 난 안쪽문으로 갔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리더니 뒤로 문을 밀고 나갔다. 문은 열어놓은 채였다. 다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도망치는군'. 하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됐지.' 그러나 귀를 기울였다. 암탉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놈은 고원쪽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때 물이 흐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것이 무슨 소리였는지 안 것은 그가 다시 문턱에 나타났을 때였다. 그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소리없이 잠자리에 와서 다시 드러누웠다. 그제서야 다뤼는 등을 돌리고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또다시 학교 주위를 서성거리는 발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꿈이야, 꿈이라구!' 하고 그는 뒤풀이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잠을 깨보니 하늘은 개어 있었다. 이가 잘 맞지 않는 창문 틈새로 차고 맑은 공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랍사람은 이제 모포 속에서 몸을 오그러뜨리고 입을 벌린 채 완전히 마음놓고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다뤼가 흔들어 깨우자 벌떡 일어나서 정신나간 눈으로 다뤼를 바라보는 것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의 표정이 어찌나 겁에 질려 있었는지 교사는 한 걸음 주춤 뒤로 물러섰다. "겁먹을 것 없네. 나야. 아침을 먹어야지." 아랍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 안도하는 기색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허탈하고 얼빠진 얼굴이었다.

 커피가 준비되었다. 그들은 둘다 간이 침대 위에 같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전병 조각을 씹었다. 그후 다뤼는 아랍 사람을 헛간으로 데려가서 자신이 세수를 하곤 하는 수도를 가리켰다. 다뤼는 방으로 돌아와서 모포와 야전 침대를 접고, 자기 침대를 정돈한 다음 방안을 청소했다. 그것이 끝나자 학교 교실을 거쳐 앞뜰로 나갔다. 태양은 벌써 하늘에 솟아 올라 있었다. 부드럽고 생기 있는 빛이 인적 없는 고원을 적시고 있었다. 언덕길 위로는 군데군데 눈이 녹아 있었다. 다시금 돌들이 드러날 것이다. 고원 가장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교사는 인적 없는 벌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발뒤시를 생각했다. 그에게 몹쓸 일을 한 것이다. 마치 그와 한통속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어느면에서는 그를 거절해 돌려보낸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헌병의 작별 인사가 귓전에 들리는 것 같았다. 웬일인지 허전하고 무방비 상태가 된 느낌이었다. 이때 학교 저쪽에서 죄수가 기침을 했다. 다뤼는 거의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성이 나서 자갈을 하나 집어 던졌다. 공중에 쌩하고 나르더니 눈 속에 박혔다. 이 사나이가 저지른 바보 같은 범죄에 대해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그를 넘겨준다는 것은 명예상 할짓이 아니었다. 생각하기만해도 욕된 느낌이 들어 미칠 듯했다. 그래서 그는 이 아랍사람을 그에게 보낸 자기편 사람들과 감히 사람을 죽이고도 도망치지 않은 이 작자가 저주스러웠다. 다뤼는 일어서서 앞뜰 안을 한 바퀴돌다 말고 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가 학교안으로 들어갔다.

 시멘트를 바른 헛간의 바닥 위에 몸을 구부린채 아랍사람은 손가락 두개로 이를 닦고 있었다. 다뤼는 그를 바라보다가 "이리 오게." 하고 말했다. 그는 앞장서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스웨터 위에다 사냥 웃옷을 걸치고 행군용 구두를 신었다. 그는 아랍사람이 두건을 쓰고 샌들을 신는 것을 서서 기다렸다. 그들은 학교를 지났다. 교사는 그의 아랍인에게 나가는 문을 가리켰다. "가게." 하고 그는 말했다. 상대방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가는 거야." 하고 다뤼는 말했다. 아랍사람이 나갔다. 다뤼는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마른 빵과 대추야자 열매와 설탕 꾸러미를 꾸렸다. 교실에서 밖으로 나가기전에 그는 자기 책상 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렸으나 곧 교실 문턱을 넘고 후딱 문을 닫았다. "이쪽이오." 하고 그는 말했다. 죄수의 앞에 서서 그는 동쪽을 향해 갔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이르럿을 때 뒤에서 무슨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발길을 돌려 되돌아와 집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아랍사람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듯 그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가지." 다뤼는 말했다.

 그들은 한 시간쯤 걸은후 뾰족한 석회암 옆에서 쉬었다. 눈은 점점 더 빨리 녹았고 태양은 물웅덩이들을 빨아올리며 아주 빠른 속도로 고원을 말끔히 씻어내고 있었다. 고원은 차츰 물기가 마르면서 공기처럼 진동하고 있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을때는 발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땅이 울렸다. 이따금 새 한마리가 유쾌한 소리를 내며 그들 앞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다뤼는 심호흡을 하며 신선한 햇빛을 들이 마셨다. 이 낯익고 광막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자 그의 안에서는 일종의 열광이 용솟음쳤다. 푸른 하늘에 덮인 이 공간은 지금 온통 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은 다시 남쪽을 향해 내려가면서 한 시간을 걸었다. 바삭바삭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어떤 편편한 고지에 당도했다. 여기서부터 고원은 동쪽으로는 몇그루의 앙상한 나무들이 눈에 뛰는 저지의 평원을 향해 내리막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풍경을 기복이 심한 모습으로 바꾸어놓고 있는 바위덩어리들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다뤼는 두 방향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지평선 저 끝에 걸린 하늘뿐, 사람의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랍 사람을 돌아보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랍 사람은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뤼는 그에게 꾸러미를 내밀었다. "자, 받게. 이건 대추야자 열매와 빵과 설탕이야. 이틀은 견딜 수 있을꺼야. 여기 돈도 천 프랑 있고." 아랍사람은 꾸러미와 돈을 받아들었지만 받은 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그걸 움켜쥔 두 손을 가슴 높이만큼 쳐들고 내리지를 못했다. "자, 이제 또똑히 봐." 하고 교사는 말하며 그에게 동쪽을 가리켰다. "이건 탱기로 가는 길이야. 두시간만 걸으면 돼. 탱기에는 도청과 경찰서가 있어. 거기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아랍사람은 여전히 꾸러미와 돈을 품은채 동쪽을 바라보았다. 다뤼는 그의 팔을 잡고 딱부러지게 남쪽을 향해 돌려 세웠다. 그들이 서있는 고지 아래로 길이 보일락 말락 했다. "여기 이건 고원을 횡단하는 길이야. 여기서부터 하루만 걸어가면 목초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유목민들을 만나게 될 거야. 그들은 자기네 법에 따라 자네를 맞이하여 보호해줄걸세." 그러자 아랍 사람이 다뤼를 향해 돌아섰다. 어떤 공포의 빛 같은 것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것 보세요." 그가 말했다. 다뤼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무 말 말게. 자, 나는 가겠네." 그는 등을 돌리고 학교 방향으로 두어 걸음 크게 내딛다가, 가만히 서 있는 아랍사람을 애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다시 떠났다. 몇분 동안 들리는 것은 차가운 땅위에 또렷이 울리는 자신의 발소리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난 후에 돌아보았다. 아랍 사람은 여전히 그 언덕 끝에, 이제는 두팔을 축 늘어뜨리고 서서 교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뤼는 목이 꺽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답답한 나머지 욕을 하며 크게 손짓을 해 보인 다음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시 멈춰 서서 돌아보았을 때는 벌써 멀리 온 뒤였다. 이제는 언덕 위에 아무도 없었다.

 다뤼는 망설였다. 태양은 어느덧 하늘 위에 높이 떠올라서 그의 이마를 후벼파기 시작했다. 교사는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내 결심을 한 듯 온 길을 되짚어갔다. 작은 언덕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전속력으로 언덕을 올라가 헐떡거리며 정상에서 걸음을 멈췄다. 남쪽으로 바위들이 뒤덮인 곳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 윤곽이 뚜렷하게 보였지만, 동쪽에 있는 들판 위에는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가 벌써부터 아물거리고 있었다. 다뤼는 이 가벼운 안개 속에서 감옥으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아랍 사람을 발견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얼마가 지난 후 교실의 창 앞에 우두커니 선 채 교사는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져 고원 전체의 표면에서 튕겨오르는 싱싱한 햇빛을 멍하나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 흑판 위에는 꾸불꾸불한 프랑스강들 사이로 어느 서투른 손이 분필로 써놓은 글자가 보였다. 그도 이제 막 그걸 읽고 난 참이었다. '너는 우리의 형제를 넘겨주었다.. 그대가를 치르리라.' 다뤼는 하늘과 고원, 그리고 저 너머 바다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보이지 않는 땅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그 토록 사랑했던 이광막한 고장에서 그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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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광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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